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휘트니 휴스턴 (문단 편집) === [[머라이어 캐리]] 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D0LFnJaVsAECLX1.jpg|width=100%]]}}} || || 1999년 3월 21일, 제 71회 OSCAR 시상식에서 휘트니와 머라이어가 웃으며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. 이날 시상식에서 둘은 "When You Believe" 듀엣 공연을 했다. || > '''오랫동안 라이벌로 묘사되어 왔지만 사실은 정말 친한 친구이다. 또 휘트니는 머라이어가 존경하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이다.''' [[머라이어 캐리]]는 휘트니와 관련한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"그녀를 존경한다."고 대답해왔고 실제로 그러했다. 머라이어는 Sweet Sweet Fantasy 유럽 투어에서 휘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"[[When You Believe]]"를 부르기도 했으며, 이후에도 머라이어는 휘트니의 기일이 되면 자신의 sns에서 휘트니를 언급한다. [[2020년]] 휘트니가 [[로큰롤 명예의 전당]]에 헌액되었을 때 인터뷰에 응해서 "그녀의 모든 것에 영감을 받았다."고도 이야기했다. ---- [[1990년]], 소니 레코드의 토미 머톨라가 휴스턴의 아성에 대적하기 위해 머라이어를 발굴해서 데뷔시키자 마자, 평론가들은 머라이어의 보컬을 두고 "휘트니 휴스턴이 생각나는 보컬"이라고 평가하며 두 가수를 비교했다. 이후 머라이어의 1집 《[[Mariah Carey(음반)|Mariah Carey]]》가 [[빌보드 200]] 11주 1위, [[1991년]] 빌보드 200 연말차트 1위를 달성하는 등 성공을 거두는 반면, 휘트니의 3집 《[[I'm Your Baby Tonight]]》이 비교적 부진하자, 두 가수를 비교하는 식의 언론 보도는 점차 심해진다. 일례로, 1990년 한 인터뷰에서 휘트니는 인터뷰어에게 "머라이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"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.[[https://youtu.be/DshDgKom-f8|영상1]] 이는 머라이어도 마찬가지였다.[[https://youtu.be/1acBBWlZdv4|영상2]] 사실, [[1991년]] 당시 머라이어는 데뷔 음반을 성공시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신인 가수, 라이징 스타의 입지였으나, 휘트니는 앞선 두 음반을 이미 굉장히 성공시켰던 세계적 탑스타의 입지였고,[* 당시 기준으로, 휘트니의 1집과 2집은 여성 가수의 음반으로서는 유례 없는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. 당시에 이 두 음반과 비슷한 성공을 거둔 여성 가수의 음반은 [[마돈나(가수)|마돈나]]의 《''[[Like a Virgin]]''》, 《''[[True Blue]]''》와 [[캐롤 킹]]의 《''[[Tapestry]]''》, 트레이시 채프먼의 《''Tracy Chapman''》 뿐이었다.] 비록 3집이 앞의 두 음반에 비해 부진했어도 여전히 업계 기준으로는 성공한 음반이었기에 휘트니의 입지나 인기에는 변함이 없었다. 그러므로 이 당시 상업적 성취를 갖고서 머라이어와 휘트니를 비교하는 데 무리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. 이는 [[1992년]] 휘트니가 《[[The Bodyguard OST]]》를 발매하며 남녀 가수 통틀어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성공을 거두면서 더욱 그러했다. 그러나 휘트니가 휴식기를 취하고 배우 활동에 집중하는 동안, [[1994년]]부터 머라이어가 연이어 세계적인 히트작을[* 《[[Music Box]]》('93~'94), 《[[Merry Christmas]]》('94), 《[[Daydream]]》('95~'96). 세 음반 합쳐서 총 판매고 6000만 장에 달하는 판매고를 기록했고 이 3개의 음반에서 빌보드 1위곡이 6개, 빌보드 연말차트 Top10곡이 5개나 나왔다. 명실상부한 머라이어의 전성기] 내면서 당대 탑스타의 입지를 확고히 한다.[* 머라이어는 3집 《Music Box》를 기점으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. 1·2집은 미국 등지에 한정된 인기였다.] 이렇듯 90년대 중반까지[* 96년 이후로는 머라이어나 휘트니 모두 커리어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다. 그리고 이때부터 [[셀린 디옹]]의 독주가 90년대 말까지 이어진다.] 두 디바가 영향력을 양분하면서, 차트 상에서의 경쟁이 심화하는 양상을 보이자, 언론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이 경쟁을 긍정적으로 비추기보다는 팬덤을 부추기면서 자극적인 기사를 써냈고 수많은 루머들을 양산했다. [[1998년]], 두 디바가 합심하여 [[이집트 왕자]] OST "[[When You Believe]]"를 발매한다. 녹음할 때 누구 이름을 먼저 넣는지로 싸웠다거나, 사이가 너무 안 좋아서 서로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고 따로 녹음을 했다는 둥 여전히 루머는 많았지만 둘은 같은 녹음실에서 한 게 맞다며 루머를 공식적으로 부정했고 자신들이 좋은 친구라고 말했다. 이 루머는 녹음할 때 테이크를 따로 가져간 것이 와전된 듯한데, 원래 듀엣곡은 '듀엣이면 사이좋게 녹음실에 들어가서 같이 해야지'라는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두 보컬이 따로 녹음을 해서 한 트랙으로 합치는 것이다. 그래야 한사람 한사람의 목소리를 깔끔하게 뽑아낼 수 있기 때문.[* 피아노 따로, 드럼 따로, 베이스 따로, 현악기 따로, 보컬 따로, 코러스 따로. 이렇게 트랙을 하나하나 녹음하고 멀티 트랙으로 합치는 것이 바로 믹싱이다.] 즉 두 사람이 사이가 안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따로 하는 게 맞다.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시에 부르는 파트는 서로 합을 맞춰 부르는게 낫기에 한날 한시에 녹음하는게 더 낫긴 하다. 아니면 가수 개개인만의 곡의 이해도가 달라 그루브가 다르기 때문. 따로 하면 먼저 녹음한 쪽에 맞춰야 한다. 결국 따로 한단 건 각각의 마이크로 서로 모니터링 하며 다른 부스에서 부를 뿐이란 것이다. 결과적으로 "When You Believe"는 빌보드 최고 15위라는 이름값에 비해 아쉬운 결과를 내고 만다.[* 곡의 부진은 두 가수의 인기 하락세, 영화사, 휘트니, 머라이어 셋의 프로모션 의견차 등등의 원인이 있었다.] 이후 휘트니 휴스턴은 [[2002년]] 《[[Just Whitney..]]》 음반 활동기에 실망스러운 라이브를 보여주며 내리막길을 걷다 재기의 발걸음을 내디뎠으나 결국 사망했고, 머라이어 캐리는 [[2001년]] 《[[Glitter]]》프로젝트의 참패 이후 몇 년 간 암흑기를 겪다 [[2005년]] 《[[The Emancipation of Mimi]]》로 재기에 성공한다. 하지만 "When You Believe"는 시간이 흐를수록 '전설적인 두 디바가 함께한 명곡' 등으로 화제되면서 스포티파이나 유튜브 같은 신세대 플랫폼과 매체 등에서 꾸준히 소비가 되고 있다. 현재는 두 가수 모두에게 의미있는 곡이 되었다. 두 가수는 "[[When You Believe]]" 활동을 계기로 처음 대화를 주고받았으며, 막상 대화를 해 보니 마치 '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' 서로 말이 잘 통했다고 한다.[[https://www.google.com/amp/s/www.biography.com/.amp/news/whitney-houston-mariah-carey-feud|자료]] 두 가수의 우정은 이후 쭉 이어졌고, [[2012년]]에 휘트니가 사망했을 때 그해 [[BET]] 어워드에서 머라이어가 추도사를 낭독하기도 했다. 이 두 사람간의 라이벌 관계는 90년대 내내 핫토픽이었는데, [[1998년]]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도 언급되고 후에 한국의 프로그램 [[서프라이즈]]에서도 특집으로 다뤄질 정도. '역사상 최고의 라이벌리'로 꼽히기도 한다. 90년대 당시 최고의 여자 가수였던 만큼 두 팬덤 간의 라이벌 의식도 엄청났고 관심도 쏟아졌던 듯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